기후 변화는 단지 환경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오늘날 경제 시스템 전반에 강력한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특히 인플레이션이라는 측면에서 새로운 도전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이 글에서는 기후 변화가 인플레이션에 어떤 방식으로 장기적인 영향을 미치는지, 그리고 최근 주목받는 개념인 녹색 인플레이션(Greenflation)이 왜 중요한지를 구체적인 사례와 함께 살펴본다.
1. 기후 재해가 공급망을 붕괴시키고 물가를 자극한다
최근 몇 년간 전 세계에서 벌어진 기후 재해는 단순한 재난을 넘어 글로벌 공급망을 위협하고 있다. 공급망 붕괴는 필연적으로 비용 증가와 소비자 물가 상승으로 이어진다. 이는 ‘비용인상 인플레이션(Cost-push inflation)’이라는 전통적인 경제 개념으로 설명되지만, 그 기저 원인이 기후라는 점에서 특별하다.
예를 들어, 2021년 독일과 벨기에를 덮친 대규모 홍수는 자동차 부품을 포함한 여러 산업에 타격을 입혔다. 공장 가동 중단, 물류 경로 차단 등의 현상은 생산 지연과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이어졌고, 이는 그대로 최종 소비자 가격에 반영되었다.
또한,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발생한 대형 산불은 목재 공급을 제한해 주택 건축 비용을 끌어올렸다. 이러한 현상은 일시적인 사건으로 보일 수 있지만, 기후 변화로 인해 이러한 재해가 빈번해지고 있다는 점에서 구조적 문제로 받아들여야 한다.
국제 식량 가격 역시 기후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세계 곡창지대에서의 가뭄이나 홍수는 밀, 옥수수, 콩 등의 농산물 가격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이는 식료품 가격 전반을 자극하는 주요 요인이 된다.
2. 녹색 인플레이션(Greenflation): 친환경 전환이 물가를 끌어올린다
Greenflation, 즉 녹색 인플레이션은 친환경 전환 과정에서 발생하는 물가 상승 현상을 의미한다. 특히 탈탄소화 정책, 에너지 구조 개편, 재생에너지 확대와 같은 환경 중심 정책이 도입되면서, 이와 관련된 자원과 기술의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리튬, 니켈, 구리 등 배터리 및 전기차 생산에 필요한 희귀 금속의 가격 급등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전기차 수요가 급증하면서 리튬 가격은 2021년 이후 300% 이상 상승했다. 이는 단순한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앞으로 10~20년 이상 지속될 수 있는 구조적 인플레이션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
또한, 탄소세 도입과 탄소배출권 거래제(ETS) 역시 제조업체와 에너지 기업에게 추가 비용 부담을 주고 있다. 유럽연합은 2030년까지 탄소 배출을 55% 감축하는 ‘Fit for 55’ 정책을 추진하면서, 기업들은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하고 친환경 기술에 투자해야 한다. 이 비용은 결국 소비자가 부담하는 물가 상승으로 전가될 수밖에 없다.
한편, 화석연료에서 재생에너지로의 급속한 전환이 오히려 단기적인 에너지 수급 불균형을 초래하기도 한다. 중국이 석탄 생산을 제한하고 재생에너지 확대를 추진하던 2021년, 일시적인 전력 부족으로 인해 제조업 생산에 큰 차질이 발생했고, 글로벌 물가에 파급효과를 미쳤다.
3. 기후와 물가, 새로운 정책 균형의 시대
기후 변화로 인한 인플레이션 압력은 단기적 충격을 넘어 장기적인 구조 변화로 인식되어야 한다. 이는 중앙은행과 정부의 정책 결정에도 영향을 미친다.
예를 들어, 유럽중앙은행(ECB)은 2021년 이후부터 기후 리스크를 통화정책에 반영하겠다고 공식 발표했다. ECB 총재 크리스틴 라가르드는 “기후 변화는 물가 안정에 대한 도전이며, 중앙은행의 새로운 임무가 될 수 있다”고 언급했다. 이는 기존의 중앙은행이 '물가 안정'이라는 하나의 목표에 집중하던 시기에서 벗어나, '기후 안정과 물가 안정 사이의 균형'을 고민하는 시기로 나아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앞으로 정부는 에너지 전환 과정에서 발생하는 가격 상승을 얼마나 완화할 수 있을지, 중앙은행은 인플레이션 목표를 기후 요인과 어떻게 조화시킬 수 있을지가 관건이 된다.
이와 관련해 일부 전문가들은 “친환경 전환은 장기적으로 비용 절감과 경제 성장에 기여할 수 있으나, 단기적으로는 필연적으로 인플레이션 압력을 유발한다”고 분석한다. 따라서 기후 변화 대응 비용을 어떻게 분산하고, 누가 부담할 것인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매우 중요해진다.
결론: 기후 변화는 인플레이션의 ‘새로운 변수’다
기후 변화는 더 이상 환경 문제에 국한되지 않는다. 그것은 글로벌 경제, 공급망, 정책 결정에 깊숙이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 되었으며, 특히 물가 상승이라는 민감한 경제 지표와 직결되고 있다.
Greenflation이라는 신조어가 나타난 것은 이러한 변화의 상징이다. 친환경 전환이 불가피한 시대에, 우리는 단순히 가격만이 아니라 그 가격이 왜 오르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이해가 필요하다.
기업은 공급망의 기후 리스크를 고려해야 하며, 정부는 취약계층을 위한 인플레이션 방어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그리고 소비자 역시 앞으로의 물가 흐름이 단지 금리나 원자재 때문이 아니라, 지구의 변화 때문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기후 변화와 인플레이션은 이제 함께 가는 구조적 이슈다. 앞으로의 경제를 바라볼 때, 이 둘의 연결고리를 이해하는 것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될 것이다.